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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제목 [공지] [함께하는동역자] 하나님이 주인되시는 삶 날짜 2018.09.14 17:48
글쓴이 샘복지재단 조회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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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하나님을 만나시게 된 과정을 말씀해 주세요.

9명의 자녀를 낳은 외증조모는 성장하다가 또는 결혼을 앞두고 죽기도 하여 7명의 자녀를 잃게 되면서 제 정신이 아니었답니다. 그런데 이웃의 누군가가 예배당에 가보라고 권하였고 외증조모는 주일예배는 물론이고 구겨짐 없는 반듯한 옷차림으로 새벽예배를 드리셨다 합니다. 외가 쪽으로는 4대째 모태신앙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 힘든 마음을 상담해 주신 영어선생님께서 복음을 전하셔서 그때 주님을 영접하였습니다.

Q. 의대교수, 특별히 해부학 교수님이신데, 이를 전공하시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나요?

저는 그냥 어렸을 때부터 당연히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의대를 다니면서 해부학 과목이 A를 받지 못한 게 내내 마음에 걸려 졸업 즈음 인턴시험을 앞두고 해부학 주임교수님을 찾아뵈었더니 기뻐하시며 조직학(미세해부학)을 전공하면 좋겠다고 정해버리셨지요. 조교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30년의 교수생활이 지나고 3년 후 은퇴를 합니다.

Q. 국내외 의료선교를 많이 다니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의료봉사를 준비하는 분들에게 어떤 조언의 말씀을 해주고 싶으세요?

먼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신뢰하며 현지의 상황을 잘 알고 준비한 다음 선교지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현지 사정에 따라 세밀한 준비, 예를 들면 소독약통을 준비하는 일까지도 잘 확인해야 할 것 같아요. 이를 위해서는 전문 의료인들이 계속 모여서 의논하고 준비해야 하는데 항상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낯선 현장에 도착해서 바로 그들을 포옹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직접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의 삶이 보이고, 그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기쁨으로 변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정성껏 준비해 간 약품을 나눠주고 의료진이 직접 눈과 눈을 맞대고 진료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이 대단히 보람된 일 같아요. 더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할 때 가장 큰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고요. 결론적으로 의료선교는 단순히 의사가운을 입고 청진기를 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잘 준비하고 현지에 잘 맞추어서 가야 보다 효율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샘복지재단의 후원자님으로서 교수님과 어머님이신 김영자 권사님께서 오랫동안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두 분 모두 북한 동포를 위한 특별한 뜻이 있으신지요?

북한은 저에게 꼭 해야만 하는 숙제 같아요. 저희 아버님께서는 평양, 어머님께서는 평북 선천이 고향이세요. 이미 돌아가신 아버님은 평생을 교사이자, 장로님으로 섬기셨는데
6.25 당시 새벽 어느 날 주무시다 말고 중공군이 몰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 1주일만 있다 올게요.”하고 둘째 형님과 내려오신 게 마지막이 되었다고 하셨어요. 어느 날 꿈에서 할머니를  보고 '어머니, 어머니'를 부르니 멀리 사라지시더라며 돌아가신 것 같다하시며 우셨지요. 북한에 있을 조카들이라도 찾아 할머니 산소에 가보고 싶다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저에게라도 허락하실는지 기대해봅니다. 저희 어머니는 부모님과 함께 남쪽으로 이사를 오신 후 전쟁이 일어나 외가에 잠깐 맡긴 큰 언니와 작은 오빠를 영영 못 만나게 되었지요. 고령의 나이에도 이 형제들을 위해 지금도 기도하고 계세요.

Q. 2년 전 북녘동포를 위해 큰 금액을 후원하셨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요?

제 막내 여동생이 먼저 하나님 곁으로 가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어요. 여동생(김희정)은 미국에서 로스쿨을 마치고 변호사가 되었는데 곧바로 말기암 판정을 받게 되었지요. 당시 극심한 고통 속에서 계속 예수님 예수님을 부르며 결국엔 하나님 곁으로 갔어요. 열심히 살아 온  동생이 일하며 모은 돈을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써달라고 어머니에게 유언으로 남겼기에 어머니는 그 약속을 지키려고 샘복지재단 사역에 동참하게 되었지요. 지금도 어머니는 동생의 심부름이라며 계속 그 약속을 하나님 앞에서 이루려 눈물로 기도하고 노력하고 계세요. 정작 어머니 본인은 몇 천원 하는 과자 한 봉지 사는 것도 아까워하면서 선교를 위한 물질과 기도의 후원은 아끼지 않으세요.

Q. ‘사랑의 왕진버스’에 많이 참여하셨는데, 우리나라에 이주 나그네로 온 이들을 위해 어떻게 쓰임 받을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의료봉사는 진료가 중심으로 이루어지기에 의료인의 구성과 함께 진료에 필요한 것을 갖춰야 하는데 제게는 의료봉사를 준비할 때도 그렇고 봉사현장에서도 전체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들이 함께 보입니다. 봉사현장에서도 환경과 대상에 따라 달리 대응하도록 지혜를 주셨던 것 같습니다. 이때에는 봉사에 참여한 다른 분들의 도움을 상당히 받곤 합니다. 그래서 함께 보람이 되어 기쁩니다. '사랑의 왕진버스' 이동진료는 환자와 의료봉사팀이 하나가 되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환자로 온 외국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는 우리에게서 조금이라도 예수님의 향기를 느꼈으면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그렇게 삶으로 묻어나기를 바라며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Q. 마지막으로 3년 후 은퇴를 앞두고 계신데,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요?

둘째를 출산 후 상당히 힘든 일을 겪었고 계속 이어온 영적인 갈급함이 극에 달해 '내가 죽어 있구나.' 라는 독백이 나왔습니다. 어느 날 직장인 대학으로 가는 오르막길에서 교회에 가지 않아 몇 년간 불러 본 적 없는 찬송가가 제 귀에 들렸습니다. 그러고는 예전에 복음을 전해 주셨던 영어 선생님께서 할렐루야교회(그 당시 대치동, 지금은 분당) 출석을 권유하셔서 예배를 드리고 설교 말씀을 듣고 성경을 읽으며 차츰 영적인 회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저를 붙들고 계셨던 것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이 나의 창조주, 나의 주인 되시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경건하지 못했음을 참으로 많이 느끼고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그 후로는 되도록 매일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가지려 노력하며 내 삶이 복잡해지거나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그저 하나님 앞에 앉아 있는 것이 내가 할 일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계획은 아직 없습니다. 이제껏 하나님께서 한 걸음씩 인도하시는 것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러하시리라 기대합니다. 워싱턴 미술관에서 어느 정물화를 보고는 화가의 절제된 아름다움을 느꼈는데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이라고 생각되었지요. 저도 그렇게 살아지기를 소망합니다.  S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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